성명서


 넥스트 교수 일동은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 모은 뜻을 전합니다.


 오늘 이후로 우리 교수들은 사회와의 약속으로 탄생한 넥스트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상황을 더 이 상 보고만 있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만이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꿈과 열정, 그들의 젊음을 기꺼이 위탁한 학생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사회와의 약속도 가볍게 여기는 네이버라는 오 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학교(넥스트 인스티튜트)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행정, 재정적, 물적, 인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축소되 더니 지난 11월 아예 조직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교수들은 연구원' 신분으로 발령을 내고, 재단의 신규 사업들을 준비하는 8개의 사업단위 유닛에 나누어 배치했습니다. 또한학장을 포함해 넥스트 교육을 위 해 존재했던 모든 조직과 제도는 무너졌습니다. 넥스트는 이제 '교육'이 아닌 '사업'의 공간이 되고 말 았습니다.


 우리는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넥스트 설립 철학을 통해 지속적 개선(Continuous Improvement)을 못 박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학생 모집에서 커리큘럼, 교육 방식, 운영 제도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 토론했고 고치고 또 바꿔왔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 교육의 실패를 단정할만한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놀라운 성장 과정,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 외부 평가들을 보면서 우리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곳곳에 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재단은 이런 교육의 내용적 성과와 가능성은 무시하고 오로지 투자수익률(ROI)의 잣대로만 변화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기업의 경영성과 측정기준의 눈만으로는 교육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재 단 쪽이 그 근거로 내세운 학생 1인당 교육비가 과다하다거나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너무 작다는 주장 들도 교수들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 절대치도 다른 주요 대학 대비 높은 수준이 아니며, 애초 우리 가 원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긴 교육 조건들이었습니다.


 설사 기업의 시각에서 위험 신호들이 감지되었더라도 그것은 개선이나 지원의 대상이지, 서둘러 실패 로 단정하고 싹을 잘라낼 일은 아닙니다. 아직 첫 졸업생도 안 나온 시점입니다. 넥스트의 공익적 설립 목적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넥스트는 10년 간 1,000억원을 들여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바꿀 인재들을 제대로 키워내겠 다는 네이버의 의지이자 사회와의 약속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재단 만의 전유물도 아니며, 교수 등 다른 넥스트 구성원들만의 것도 아닌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공적자산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학위도 없고 취업을 보장하지도 않는데도 수천명의 학생들이 우리 약속을 믿고 기꺼이 넥스트에 지원 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과 소프트웨어 커뮤니티들은 그 뜻에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그 약속과 기대를 이렇게 허망하게 져버려서는 안됩니다. 어떻게든 졸업만 시키면 되 는 게 아닙니다. 학업계획서에 부모님께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한 학생의 다짐, 대학을 자퇴한 자식의 선택을 지지한다며 잘해달라고 부탁한 한 어머니의 편지, 평생 넥스트 출신 개발 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한 학생의 페이스북 글, 네이버 보다 더 오래가는 학교를 만 들겠다던 전 학장의 말. 이 모두가 네이버가 지켜야 할 무거운 약속들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가슴뛰는

보람 느껴보겠다고 10~20년 직장 버리고 합류한 우리 교수들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소통 없는 재단의 일방적인 '독주'로 학교는 이미 많이 망가졌습니다.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교 수와 학생 모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새로 맡은 재단 업무를 감당하느라,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수업 준비, 강의, 상담 등 본연의 일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단에 설 의욕조차 잃고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 교수들도 다수입니다. 학생들은 학교를 지켜보겠다며 그동 안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던 학생회를 처음으로 구성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이 여기저기 실상 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도 안타깝습니다.


 우리 교수 일동은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원하는 진정한 인재는 공장 라인에서 대량생산하듯이 속성으 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믿음으로 출발한 넥스트호에 기꺼이 몸을 맡긴 사람들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들인 만큼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와 효율에 집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달라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교육은 기다림이 필요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자 켄 로빈슨 경이 말한 대로 교육 에 임하는 자는 제조자가 아닌 농부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넥스트가 하루 빨리 정상화되길 염원합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이끌어갈 소프트웨어 인재들 의 꿈이 약동하는 희망의 공간으로 말입니다. 더 나아가 네이버가 주위의 찬사와 기대를 모으며 시작했 던 약속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실적에 의해 좌지우지 되 는 기업도 교육의 참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모범이 되는 시작이 이곳에서 부활하길 기원합니다.


 넥스트 교수 일동은 넥스트 정상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하루빨리 학교 정상화를 위한 임시 기구(가칭: 넥스트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네이 버 쪽에 제안합니다. 이 기구를 통해 독립적 외부 전문가, 교수, 학생, 네이버가 동수로 참여해 공익성 과 교육의 독립성,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새 이사진과 학교 운영진을 선임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둘째, 재단 이사장과 실질적으로 행정 업무를 총괄한 자문위원은 이후 넥스트 정상화 과정에 일체 개 입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이사장과 자문위원은 일련의 넥스트 변화 과정 속에서 이미 교수, 학생 등 넥스트 구성원의 신뢰를 잃은 상태이며,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존 넥스트 교육과 현행 재단의 완전한 분리(인적, 재무적, 행정적) 및 기존 넥스트 교육의 독 립적인 운영을 요구합니다. 교육의 내용과 철학, 지향이 전혀 다른 현행 재단 아래서는 넥스트 교육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어중간한 동거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재단의 다른 사업들의 원활한 진행과 성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20141211

넥스트 교수 일동 







원본 출처: http://www.bloter.net/archives/215114




NHN 넥스트의 교육과정 개편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재단의 일방적인 개편에 학생들과 교수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재단 쪽은 재학생 휴학률을 근거로 기존 교육과정이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학생과 교수 쪽은 융합형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육성하겠다는 애초의 설립 취지를 재단 쪽이 망가뜨리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이런 가운데 NHN 넥스트 2기에 재학중인 학생이 <블로터>에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그 전문을 게재합니다. 이 글은 NHN 넥스트 교수와 재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개 커뮤니티에 12월9일 게시된 바 있습니다. <블로터>는 12월11일 기고자와 직접 전화로 통화해 기고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실명이 알려질 경우 네이버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된다’는 기고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게재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_편집자


 한 학교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대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학위는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최고의 교수진과 커리큘럼, 시설 등을 자랑한다는데, 이는 동네 속셈학원에서도 자랑하는 역량이니 차별성이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IT 대기업이 지원을 한다기에, 혹 이곳을 졸업한 후 그 기업으로 취업 시 무슨 혜택이 있는지를 물으니 답변이 가관입니다. 해당 기업에 지원 시 어떠한 혜택도 없지만, 그들도 우리를 마음대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 자칭 학교라는 곳에 지원을 한답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사회 초년기의 몇 년이 갖는 의미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선뜻 이 대학에 지원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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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학교 교육방식, 운영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강의를 원하면 개설해 주겠다.’
‘학기당 최소 이수학점 제한을 두지 않겠다.’
‘재학연한 안에서는 얼마든지 휴학해도 좋다.’
‘학생의 배움을 위해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 외에는 교수실을 항상 열어 놓겠다.’

NHN 넥스트를 신뢰하게 된 까닭

개개인의 배움의 속도(‘러닝 커브’라는 표현을 하더군요)가 다르니 개인의 속도에 맞는, 그야말로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신의 현재 수준에 맞춰 맘껏 원하는 강의를 듣고, 자신의 현재 수준에 맞춰 수업 양을 조절하고, 자신의 현재 수준과 상황에 맞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자신의 이해 정도에 맞춰 얼마든지 교수가 시간을 내어 주겠다는 겁니다.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야 너무나 중요한 가치이지만, 사실 실현이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이 얼마나 실행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언뜻 생각해봐도 휴학률은 통제가 안 될 테고, 학업 연한은 2년 6개월이라는데 그 안에 제대로 졸업하는 학생의 수도 어림잡기 어려워 보입니다.

단기 성과만이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되어버린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그 절대선을 전면에서 거부하겠다는 것이죠. 대학에서 성과란 졸업생의 수가 큰 비중을 차지할 테니까 말이지요. 한 술 더 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입학생 대비 졸업생의 비율을 70% 정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쉽게 실행하기 어려운 방식의 실행을 약속한 만큼, 느리더라도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을 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힘을 갖게 됩니다. 말이 실체를 갖게 됩니다. 진정 신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저는 저뿐만 아니라 NHN 넥스트에 재학 중인 많은 친구들이, 또 교수님들이 그리고 선생님들이 넥스트를 학업의 장으로 또 직장으로 삼기로 결심을 한 데는 위에 언급한 방식의 차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교수님들이 현업에서 아무리 뛰어나셨던 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가르침의 역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아마도 당신들이 가르치게 될 학생이 어떠한 학생인지, 가르침을 통해 당신들에게 보람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학생들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이제 막 설립된 혹은 설립이 될 곳을 직장으로 선택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스트를 선택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방식을, 이러한 철학을 지지하며 그 아래 모인 사람들과 함께라면 새로운 교육을,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이 


변화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요?

NHN 넥스트 이민석 학장이 말하는 훌륭한 개발자의 정의.

NHN 넥스트 이민석 학장이 말하는 훌륭한 개발자의 정의.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을 뿐 아니라, 이 곳에 입학을 할 때도 많은 두려움과 걱정을 갖고 있었고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배움의 길을 함께 만들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용기가 없다는 말씀을 하셔선 안 됩니다.

우리가 지원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 재단의 사업을 막는 욕심쟁이라고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재단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그 사업을 지지합니다. 그 사업에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저희의 생활공간을 4분의 1로 줄이고 입학생 규모를 줄이는 것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함께 해온 노력을 엉뚱한 잣대를 가지고 문제가 있다고 결론짓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함께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보자는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했던 교육을 보장해주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벌써 과거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들을 지금의 현실로 오롯이 돌려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개개인의 배움의 수준과 환경에 맞게 맘껏 공부하고 또 배움을 위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돌려주셔야 합니다. 교수님들이 재단의 회의장이 아니라 당신들의 연구실에서, 재단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학업을 위해 당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수개월전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재학 연한의 축소와 휴학 연한의 축소, 휴학을 할 권리의 축소 그리고 배움의 속도를 조절할 권리의 축소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쉬이 잃음은 결코 그것들의 가치가 가벼웠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생과 교수, 선생님 그리고 학교에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 가치 있는 배움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이룩한 성과를, 노력을, 신뢰를 더 이상 해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함께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가자는 약속을 거두어 주시지 않길 바랍니다.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는 자신을 포장할 유일한 브랜드인 대학을 포기하고, 또 누구는 자신이 쌓아왔던 탑에서 그리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벗어나서 넥스트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학교측 혹은 재단측이라고 하는 그들이 휴학률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가슴 아픕니다. 높은 휴학률이 문제 없다고, 학교의 단기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함께하자고 했던 분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오히려 그 휴학률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규 기자 : 블로터 미디어랩장입니다. 이메일은 dangun76@bloter.net 트위터는 @dangun76 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독자 아이디어랩(https://www.facebook.com/groups/642958525791424/)에서 더 많은 얘기 나눠요.

원본 출처 : http://www.imaso.co.kr/news/article_view.php?article_idx=20141209133252


"우리를 조금 더 기다려 줄 순 없었나요…"


아래글은 NHN NEXT 1기 학생과 나눈 얘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각색했다. 학생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NHN NEXT는 네이버가 2011년 설립한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이다. 2013년 1기, 2014년 2기를 뽑아 교육하였으며 2014년 12월 3기를 선발중이다. 네이버는 NHN NEXT에 3가지 변화를 주기로 2014년 결정하였으며,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으로 대중에게 교육하는 플랫폼과 대학원 대학을 설립하고 1기와 2기에게 교육 중인 교육기관을 존속할지를 검토중이다. (이미지출처: Pascal Polosek CC_BY)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도이용(가명)입니다. 학교에서는 이제 교수님들이 교수님이 아니고, 연구원이라고 했지만, 제겐 ‘교수님’이 익숙합니다. 계속 이렇게 불러도 되지요? 예전처럼 학교에서 교수님을 뵐 수 없어서 편지를 올립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밤에든, 주말이든 학교에 가면 언제든 교수님을 뵐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자리에 안 계실 때가 잦아서 아쉬워요.

요즘 제 마음이 답답해서 교수님께 털어놓고 싶어요. 또,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고요.

교수님들이 저희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 알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돌아가면서 글을 써서 그렇지요? 그 글들을 외부에서 다 읽고 있을 테고요. 학교 재단에서도 읽었겠지요. 그리고 네이버도요. 저도 그렇고,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요, 저희가 받은 좋은 교육을 우리만 받고 끝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NEXT가 정말 훌륭하고 좋아서 우리만 교육을 받을 순 없다고, 이런 얘길 저희끼리 나눴어요. 그 자리에서 저는 놀랐어요. 자라면서 경쟁, 경쟁, 경쟁 얘기만 들었는데요. 남을 이겨야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 좋은 걸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을 나누다니요. 나만 받기 아까운 교육이라는 말도 나왔고요. NEXT가 학교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것만큼, 이 대화가 충격적이었답니다.

다 교수님들 가르침 덕분인 걸까요. 항상 그러셨잖아요. “개발이라는 게 혼자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이 가야만 우리 모두 성공할 수 있다.” 우리를 생각하면서 개발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전 컴퓨터를 배울수록, ‘이건 나를 위해 배우는 게 아닐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NEXT 1기이고, 혜택을 받으며 공부하는 만큼 ‘내가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가치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제가 받은 걸 다른 개발자와 공유해야겠구나’ 하고요. 이런 생각을 다른 아이들도 했으니까, 저희끼리 얘기할 때에도 저런 얘기가 나온 거겠지요.


어쩜 네이버는 돌연변이를 만들었는지 몰라요. 한국에선 존재할 수 없는, 아니 세계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어마하게 좋은 교육 집단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당장 성과가 안 보인다면서 외국에서 하는 대중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서운해요. 아, 이런 얘길 제가 직접 들은 적은 없어요. 기사로 봤지요.

11월 중순이던가요. 네이버가 대학원 대학을 만든다는 기사였는데요. 그 기사를 읽고 다들 심각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학교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 변화가 뭔지를 몰랐거든요. 기사에 ‘휴학률 40%’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게 엄청난 잘못이고 NEXT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내용이었어요. 40%에는 군대 휴학도 포함되었는데.

학교에 일어나는 변화를 직접 듣지 않고 기사로 접하니까 느낌이 이상했어요. 저희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학생회를 만들자고 얘기했어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도 ‘NEXT 설립 철학에 반하는 행동을 반대합니다’로 바꾸고요. 저희가 그렇게 해서 그런 건지, 학교에서 3주 전부터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매번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공지하니까 전체 학생이 가질 못하고 일부만 듣고 왔어요.

12월 5일, 금요일에도 5시에 간담회 한다고 그날 오후에 공지했어요. 3시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수업도 있는데. 그날은 저희 모두 안 갔어요. 학교는 모든 학생이 아니라, 소수만 모아서 얘기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저희는 그렇게 하면 학생들 의견이 제대로 모이기 어렵고, 학교와 효율적으로 대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간담회 때 말하는 직원도 매번 다르고요. 그래서 학교에, 학생회를 만들고 나서 모든 학생의 의견을 종합한 다음에 얘길 나기누겠다고 했어요.


기사 나오고 나서 한 달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교수님들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그전부터 눈치챘어요. 새 이사장님이 오실 때, 작년이죠. 이상했어요. 평소 NEXT라면 새로운 이사장님이 부임했다고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을텐데 조용했거든요. 그리고 올해 학기 초였을 거예요. 5월. 2기가 들어오는데 학교에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걸 느꼈어요. 뭔가 달라진 걸 느껴서 학생들이 학교에 확인을 요청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서, 아, NEXT 홈페이지가 바뀌던 날 교수님들이 모두 연구원으로 바뀌었죠. 이민석 학장님도 연구원이 됐고요. 소문으로 듣던 게 현실이 되자, 황당하고 화가 났어요. 저는 그게 NEXT에서 학교의 색을 빼는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외부에서 정보를 받다 보니까 답답해요. 무크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한다는 거, 저희는 듣질 못했어요. 교수님들이 네이버 신입사원 교육에 투입됐다던데, 학교는 왜 그런 변화를 저희에게 직접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왜 저희는 항상 외부의 무언가를 통해서 듣거나 보거나, 소문으로 들어야 할까요. 

교수님,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제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요. NEXT가 두 개 집단으로 나뉜 것만 같거든요. NEXT를 바꾸려고 하는 네이버나 재단 쪽 사람하고 기존에 있던 사람으로요. 다들 교육을 말하는데 재단은 효율적이고 대중적인 교육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기존 NEXT 학교는 대중적이진 않았잖아요. 네, 저도 알아요. 대중적인 소프트웨어 교육이 알려지는 건 누가 봐도 좋은 거지요. 저희는 소수만 뽑혀 교육받은 사람이고요.


그런데요, 교수님. 제가 대학교에 다니다가 휴학하고 NEXT로 온 건, 다 NEXT 설립 철학에 반해서였어요. ‘비전특강’이었던가요. 김평철 전 학장님이랑 교수님 두 분이 하신 강연회였는데요.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도구가 되는데 그 도구를 잘 써야 사용자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저를 흔들었어요.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강연이 끝나고 남았지요. 그땐 기다리는 줄도 엄청 길었어요. 한참을 기다려 한 교수님께 ‘NEXT에 들어가려면 나는 포기해야 할 게 많은데 그걸 다 보살펴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지금은 나간 교수님이셔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 거 바라면 오지마요.”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NEXT 면접 볼 때에도 비슷했어요. “네이버 보고 오는 거 아니에요?”라고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지요.

전 그게 좋았어요. 이익을 바라고 오지 말라는 거요. 보통 대기업이 대학생을 상대로 뭔가 할 때는 꾀어서 데리고 가잖아요. 비전공자가 소프트웨어를 배운다는 것,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이걸 잘해야 다른 사람에게 더 큰 가치를 줄 수 있단 얘기가 제겐 와 닿았어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가슴이 아파요. NEXT는 변화할 거란 말을 항상 들었고, 그 얘기에 공감했지만, 초기 철학까지 바꿀 줄은 몰랐어요. 초기 철학에 반해서 온 사람이 있는데도 이 사람들을 고려하고 ‘대중교육이 좋고 성과가 나니 그쪽으로 가야 해’라고 진행하니까 1기나 2기 학생은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주말에도, 명절에도 학교에 나오고 말이에요. 올 설에 학교 나온 사람끼리 치킨집 갔다가 아주머니가 ‘어느 회사 사람들이길래 명절에도 일하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제 구글플러스는 제게 NEXT를 집으로 표시해줘요. 그만큼 NEXT가 참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좋았다는 말씀을 과거형으로 드리게 됩니다. 아직 NEXT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아니네요. 간담회에서 직원이 대놓고 ‘넥스트는 앞으로 없어진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하겠다는 걸로 들렸어요. 


기사에서 저희를 두고 ‘교육에 대한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이 말을 기사로 접한 게 너무 속상해요. 누구에게도 직접 들은 적이 없어요. 전공자는 저희를 보면 우스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비전공자도 해내고 있어요. 물론, 제가 현업 개발자처럼은 할 수 없어요. 누군가 제게 ‘자바 잘해?’라고 물으면 쉽게 ‘네’라곤 말 못하겠어요. 그런데 ‘겁이 나지 않아요’라곤 대답할 것 같아요. 비전공자들이 이렇게 변하고 있거든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린 마루타야’라고 했어요. 불평은 아니었어요. 저희를 대상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게 좋았거든요. 2기 커리큘럼은 저희가 겪은 시행착오를 쫙 빼고 나와서 부러울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런 게 앞으로 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다들 힘들어해요. 직장을 그만두고 온 사람, 대학교에 가지 않고 온 사람도 있는데…. 어린 친구들은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걸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서 여길 왔는데….

저는 묻고 싶어요. 교수님, 학교, 아니 네이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묻고 싶어요. 기존에 있는 사람을 무시, 아니 고려하지 않으면서까지 이렇게 빨리 변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를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없었나요? 지금 당장은 현업 개발자와 비교하면 미흡해도, 잠재성이 있을 텐데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건 성급한 거 아닌가요?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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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블로그 주인 작성.

제가 늘 마음으로 믿고 지지하는 친구의 인터뷰가 이렇게 기사화 되어 나왔습니다. 

늘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친구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잘 갈무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결국 인터뷰를 보면서 울고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생활이 곧 저의 생활이었으며, 그 친구와 충돌하는 토론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공감대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잘 해주어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나마 멀리멀리 남겨둡니다.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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