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출처: http://www.bloter.net/archives/215114




NHN 넥스트의 교육과정 개편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재단의 일방적인 개편에 학생들과 교수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재단 쪽은 재학생 휴학률을 근거로 기존 교육과정이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학생과 교수 쪽은 융합형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육성하겠다는 애초의 설립 취지를 재단 쪽이 망가뜨리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이런 가운데 NHN 넥스트 2기에 재학중인 학생이 <블로터>에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그 전문을 게재합니다. 이 글은 NHN 넥스트 교수와 재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개 커뮤니티에 12월9일 게시된 바 있습니다. <블로터>는 12월11일 기고자와 직접 전화로 통화해 기고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실명이 알려질 경우 네이버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된다’는 기고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게재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_편집자


 한 학교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대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학위는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최고의 교수진과 커리큘럼, 시설 등을 자랑한다는데, 이는 동네 속셈학원에서도 자랑하는 역량이니 차별성이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IT 대기업이 지원을 한다기에, 혹 이곳을 졸업한 후 그 기업으로 취업 시 무슨 혜택이 있는지를 물으니 답변이 가관입니다. 해당 기업에 지원 시 어떠한 혜택도 없지만, 그들도 우리를 마음대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 자칭 학교라는 곳에 지원을 한답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사회 초년기의 몇 년이 갖는 의미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선뜻 이 대학에 지원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nhn_next_750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학교 교육방식, 운영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인데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강의를 원하면 개설해 주겠다.’
‘학기당 최소 이수학점 제한을 두지 않겠다.’
‘재학연한 안에서는 얼마든지 휴학해도 좋다.’
‘학생의 배움을 위해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 외에는 교수실을 항상 열어 놓겠다.’

NHN 넥스트를 신뢰하게 된 까닭

개개인의 배움의 속도(‘러닝 커브’라는 표현을 하더군요)가 다르니 개인의 속도에 맞는, 그야말로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신의 현재 수준에 맞춰 맘껏 원하는 강의를 듣고, 자신의 현재 수준에 맞춰 수업 양을 조절하고, 자신의 현재 수준과 상황에 맞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자신의 이해 정도에 맞춰 얼마든지 교수가 시간을 내어 주겠다는 겁니다.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야 너무나 중요한 가치이지만, 사실 실현이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이 얼마나 실행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언뜻 생각해봐도 휴학률은 통제가 안 될 테고, 학업 연한은 2년 6개월이라는데 그 안에 제대로 졸업하는 학생의 수도 어림잡기 어려워 보입니다.

단기 성과만이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되어버린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그 절대선을 전면에서 거부하겠다는 것이죠. 대학에서 성과란 졸업생의 수가 큰 비중을 차지할 테니까 말이지요. 한 술 더 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입학생 대비 졸업생의 비율을 70% 정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쉽게 실행하기 어려운 방식의 실행을 약속한 만큼, 느리더라도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을 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힘을 갖게 됩니다. 말이 실체를 갖게 됩니다. 진정 신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저는 저뿐만 아니라 NHN 넥스트에 재학 중인 많은 친구들이, 또 교수님들이 그리고 선생님들이 넥스트를 학업의 장으로 또 직장으로 삼기로 결심을 한 데는 위에 언급한 방식의 차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교수님들이 현업에서 아무리 뛰어나셨던 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가르침의 역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아마도 당신들이 가르치게 될 학생이 어떠한 학생인지, 가르침을 통해 당신들에게 보람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학생들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이제 막 설립된 혹은 설립이 될 곳을 직장으로 선택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스트를 선택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방식을, 이러한 철학을 지지하며 그 아래 모인 사람들과 함께라면 새로운 교육을,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이 


변화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요?

NHN 넥스트 이민석 학장이 말하는 훌륭한 개발자의 정의.

NHN 넥스트 이민석 학장이 말하는 훌륭한 개발자의 정의.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을 뿐 아니라, 이 곳에 입학을 할 때도 많은 두려움과 걱정을 갖고 있었고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배움의 길을 함께 만들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용기가 없다는 말씀을 하셔선 안 됩니다.

우리가 지원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 재단의 사업을 막는 욕심쟁이라고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재단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그 사업을 지지합니다. 그 사업에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저희의 생활공간을 4분의 1로 줄이고 입학생 규모를 줄이는 것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함께 해온 노력을 엉뚱한 잣대를 가지고 문제가 있다고 결론짓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함께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보자는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했던 교육을 보장해주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벌써 과거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들을 지금의 현실로 오롯이 돌려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개개인의 배움의 수준과 환경에 맞게 맘껏 공부하고 또 배움을 위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돌려주셔야 합니다. 교수님들이 재단의 회의장이 아니라 당신들의 연구실에서, 재단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학업을 위해 당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수개월전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재학 연한의 축소와 휴학 연한의 축소, 휴학을 할 권리의 축소 그리고 배움의 속도를 조절할 권리의 축소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쉬이 잃음은 결코 그것들의 가치가 가벼웠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생과 교수, 선생님 그리고 학교에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 가치 있는 배움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이룩한 성과를, 노력을, 신뢰를 더 이상 해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함께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가자는 약속을 거두어 주시지 않길 바랍니다.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는 자신을 포장할 유일한 브랜드인 대학을 포기하고, 또 누구는 자신이 쌓아왔던 탑에서 그리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벗어나서 넥스트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학교측 혹은 재단측이라고 하는 그들이 휴학률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가슴 아픕니다. 높은 휴학률이 문제 없다고, 학교의 단기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함께하자고 했던 분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오히려 그 휴학률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규 기자 : 블로터 미디어랩장입니다. 이메일은 dangun76@bloter.net 트위터는 @dangun76 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독자 아이디어랩(https://www.facebook.com/groups/642958525791424/)에서 더 많은 얘기 나눠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