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문서가 아닌 나의 일상에 대한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박재성 교수님의 요청도 있어서 NHN NEXT에서의 최근 2년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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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안현진 선생님이 학교 홍보 영상을 제작할 때 사람들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누어주면서 ‘당신에게 넥스트는 무엇’인지 적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세 글자를 적었다.

“나의 꿈”

NHN NEXT는 S/W 고급개발자를 양성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었다. 초기에 정식으로 대학인가를 받는 것도 고려하였으나 몇 가지 제약으로 인해서 그 시점을 뒤로 미룬 상태였다. 정식 학위가 없는 학교였음에도 학교의 교육 철학에 매료된 사람들 1,000여 명이 지원하였고 그 중 86명이 합격하였다.

2013년 초 나에게는 각인된 두 가지 느낌이 있다.

첫 번째는 개강 전의 부트캠프 마지막 날 1기 학생들이 1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장면이다. 그 진지하고 순수한 모습은 그 동안 어느 집단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나중에 무엇인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그룹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는 개강하는 날 아침의 느낌이다. 개강 하는 날 나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 아침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느낌을 다시 느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NHN NEXT는 왜 ‘나의 꿈’이었을까?

되돌아보면 ‘나의 꿈’에는 꿈 같은 현실과 미래에 대한 꿈이 공존했었던 듯싶다.

나는 학생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좋았고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학생들이 S/W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았고 그 과정에 내가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이러한 느낌들이 내가 느끼는 꿈 같은 현실이었던 듯 하다.

지난 2년동안 나에게 있어서 첫 번째 우선순위는 질문하러 찾아온 학생이었다. 교수실 문은 항상 열어 두었다. 어떤 학생은 아침 9시에 찾아왔고 어떤 학생은 오후 혹은 늦은 밤에 찾아오기도 했다. 새벽 3시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강의 준비 등 해야 할 일이 있어도 학생이 찾아오면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당연히 나에게는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늦은 시각과 주말에 학교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일이기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거울 수 있었다. 

‘나의 꿈’ 중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인구가 적고 미국처럼 해외의 유능한 엔지니어를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기에 국내에는 문제해결역량을 갖춘 고급 개발자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S/W 개발자가 선망 받는 인기 직업 중 하나이지만 국내에서는 이와 달라서 S/W 분야의 고급 개발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국내 상황에서 매년 100여 명 정도의 문제해결역량을 갖춘 S/W 개발자가 추가 배출된다면 국내 S/W 분야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열심히 학습하는 학생들, 이러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끝없이 투자하는 교수님들, 학습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는 학교 정책들은 이러한 인재들을 양성하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넥스트를 국내 최고의 S/W 교육 기관으로 만들고, 넥스트 졸업장이 실력 인증서가 되고, 넥스트 졸업생들이 국내 S/W 산업계에 큰 기여를 하고, 나중에 S/W 분야의 큰 기여를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넥스트에서 나랑 같이 호흡하면서 공부한 학생이었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그리고 나중에 내가 은퇴한 후에 제자들하고 가끔 소주 한 잔 하는 것 등이 나의 꿈이었다.

넥스트 교수 지원할 때 교육 철학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교육에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은 선생(先生)이라는 한자가 포함하고 있는 의미처럼 먼저 태어난 안내자라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까지 사회에 쌓인 지식, 지식이 갖는 의미, 지식이 축적된 과정과 지식의 발전 방향에 대한 현재의 예측에 대해서 알려주고 학생이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본인이 접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 및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시켜 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안내자의 역할입니다.”

요즈음은 지난 2년 동안 나의 철학을 잘 실천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넥스트에 온지 약 2년이 지난 지금은 소풍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즐거웠던 기억, 소풍 길에 보았던 예쁜 풍경들, 걸어가면서 힘들었던 기억, 집으로 돌아올 때의 아쉬움 등. 

공부에 몰입해 있는 학생들, 10시간 동안 집중해서 시험을 보는 학생들, 밤새 코딩하는 학생들, 자신의 역량이 올라간 것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학생들의 모습.

새벽 퇴근길에 교내 리커버를 차례로 돌면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들, 강의 준비로 밤을 하얗게 새고 아침 식사하면서 나누었던 학생들과의 대화들, 휴일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나누었던 S/W에 대한 학생들과의 대화들.

MT에서 나를 물에 빠뜨리고 좋아했던 학생들의 모습, 늦은 시각까지 같이 술 마시면서 나누었던 화기애애한 학생들과의 대화들.

하나씩 차례로 떠오른다. 

잊지 못할 즐거운 소풍이었다.



----------------------------이하 원본 캡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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