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출처 : http://www.imaso.co.kr/news/article_view.php?article_idx=20141209133252


"우리를 조금 더 기다려 줄 순 없었나요…"


아래글은 NHN NEXT 1기 학생과 나눈 얘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각색했다. 학생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NHN NEXT는 네이버가 2011년 설립한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이다. 2013년 1기, 2014년 2기를 뽑아 교육하였으며 2014년 12월 3기를 선발중이다. 네이버는 NHN NEXT에 3가지 변화를 주기로 2014년 결정하였으며,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으로 대중에게 교육하는 플랫폼과 대학원 대학을 설립하고 1기와 2기에게 교육 중인 교육기관을 존속할지를 검토중이다. (이미지출처: Pascal Polosek CC_BY)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도이용(가명)입니다. 학교에서는 이제 교수님들이 교수님이 아니고, 연구원이라고 했지만, 제겐 ‘교수님’이 익숙합니다. 계속 이렇게 불러도 되지요? 예전처럼 학교에서 교수님을 뵐 수 없어서 편지를 올립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밤에든, 주말이든 학교에 가면 언제든 교수님을 뵐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자리에 안 계실 때가 잦아서 아쉬워요.

요즘 제 마음이 답답해서 교수님께 털어놓고 싶어요. 또,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고요.

교수님들이 저희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 알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돌아가면서 글을 써서 그렇지요? 그 글들을 외부에서 다 읽고 있을 테고요. 학교 재단에서도 읽었겠지요. 그리고 네이버도요. 저도 그렇고,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요, 저희가 받은 좋은 교육을 우리만 받고 끝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NEXT가 정말 훌륭하고 좋아서 우리만 교육을 받을 순 없다고, 이런 얘길 저희끼리 나눴어요. 그 자리에서 저는 놀랐어요. 자라면서 경쟁, 경쟁, 경쟁 얘기만 들었는데요. 남을 이겨야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 좋은 걸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을 나누다니요. 나만 받기 아까운 교육이라는 말도 나왔고요. NEXT가 학교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것만큼, 이 대화가 충격적이었답니다.

다 교수님들 가르침 덕분인 걸까요. 항상 그러셨잖아요. “개발이라는 게 혼자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이 가야만 우리 모두 성공할 수 있다.” 우리를 생각하면서 개발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전 컴퓨터를 배울수록, ‘이건 나를 위해 배우는 게 아닐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NEXT 1기이고, 혜택을 받으며 공부하는 만큼 ‘내가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가치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제가 받은 걸 다른 개발자와 공유해야겠구나’ 하고요. 이런 생각을 다른 아이들도 했으니까, 저희끼리 얘기할 때에도 저런 얘기가 나온 거겠지요.


어쩜 네이버는 돌연변이를 만들었는지 몰라요. 한국에선 존재할 수 없는, 아니 세계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어마하게 좋은 교육 집단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당장 성과가 안 보인다면서 외국에서 하는 대중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서운해요. 아, 이런 얘길 제가 직접 들은 적은 없어요. 기사로 봤지요.

11월 중순이던가요. 네이버가 대학원 대학을 만든다는 기사였는데요. 그 기사를 읽고 다들 심각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학교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 변화가 뭔지를 몰랐거든요. 기사에 ‘휴학률 40%’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게 엄청난 잘못이고 NEXT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내용이었어요. 40%에는 군대 휴학도 포함되었는데.

학교에 일어나는 변화를 직접 듣지 않고 기사로 접하니까 느낌이 이상했어요. 저희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학생회를 만들자고 얘기했어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도 ‘NEXT 설립 철학에 반하는 행동을 반대합니다’로 바꾸고요. 저희가 그렇게 해서 그런 건지, 학교에서 3주 전부터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매번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공지하니까 전체 학생이 가질 못하고 일부만 듣고 왔어요.

12월 5일, 금요일에도 5시에 간담회 한다고 그날 오후에 공지했어요. 3시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수업도 있는데. 그날은 저희 모두 안 갔어요. 학교는 모든 학생이 아니라, 소수만 모아서 얘기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저희는 그렇게 하면 학생들 의견이 제대로 모이기 어렵고, 학교와 효율적으로 대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간담회 때 말하는 직원도 매번 다르고요. 그래서 학교에, 학생회를 만들고 나서 모든 학생의 의견을 종합한 다음에 얘길 나기누겠다고 했어요.


기사 나오고 나서 한 달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교수님들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그전부터 눈치챘어요. 새 이사장님이 오실 때, 작년이죠. 이상했어요. 평소 NEXT라면 새로운 이사장님이 부임했다고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을텐데 조용했거든요. 그리고 올해 학기 초였을 거예요. 5월. 2기가 들어오는데 학교에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걸 느꼈어요. 뭔가 달라진 걸 느껴서 학생들이 학교에 확인을 요청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서, 아, NEXT 홈페이지가 바뀌던 날 교수님들이 모두 연구원으로 바뀌었죠. 이민석 학장님도 연구원이 됐고요. 소문으로 듣던 게 현실이 되자, 황당하고 화가 났어요. 저는 그게 NEXT에서 학교의 색을 빼는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외부에서 정보를 받다 보니까 답답해요. 무크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한다는 거, 저희는 듣질 못했어요. 교수님들이 네이버 신입사원 교육에 투입됐다던데, 학교는 왜 그런 변화를 저희에게 직접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왜 저희는 항상 외부의 무언가를 통해서 듣거나 보거나, 소문으로 들어야 할까요. 

교수님,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제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요. NEXT가 두 개 집단으로 나뉜 것만 같거든요. NEXT를 바꾸려고 하는 네이버나 재단 쪽 사람하고 기존에 있던 사람으로요. 다들 교육을 말하는데 재단은 효율적이고 대중적인 교육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기존 NEXT 학교는 대중적이진 않았잖아요. 네, 저도 알아요. 대중적인 소프트웨어 교육이 알려지는 건 누가 봐도 좋은 거지요. 저희는 소수만 뽑혀 교육받은 사람이고요.


그런데요, 교수님. 제가 대학교에 다니다가 휴학하고 NEXT로 온 건, 다 NEXT 설립 철학에 반해서였어요. ‘비전특강’이었던가요. 김평철 전 학장님이랑 교수님 두 분이 하신 강연회였는데요.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도구가 되는데 그 도구를 잘 써야 사용자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저를 흔들었어요.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강연이 끝나고 남았지요. 그땐 기다리는 줄도 엄청 길었어요. 한참을 기다려 한 교수님께 ‘NEXT에 들어가려면 나는 포기해야 할 게 많은데 그걸 다 보살펴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지금은 나간 교수님이셔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 거 바라면 오지마요.”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NEXT 면접 볼 때에도 비슷했어요. “네이버 보고 오는 거 아니에요?”라고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지요.

전 그게 좋았어요. 이익을 바라고 오지 말라는 거요. 보통 대기업이 대학생을 상대로 뭔가 할 때는 꾀어서 데리고 가잖아요. 비전공자가 소프트웨어를 배운다는 것,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이걸 잘해야 다른 사람에게 더 큰 가치를 줄 수 있단 얘기가 제겐 와 닿았어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가슴이 아파요. NEXT는 변화할 거란 말을 항상 들었고, 그 얘기에 공감했지만, 초기 철학까지 바꿀 줄은 몰랐어요. 초기 철학에 반해서 온 사람이 있는데도 이 사람들을 고려하고 ‘대중교육이 좋고 성과가 나니 그쪽으로 가야 해’라고 진행하니까 1기나 2기 학생은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주말에도, 명절에도 학교에 나오고 말이에요. 올 설에 학교 나온 사람끼리 치킨집 갔다가 아주머니가 ‘어느 회사 사람들이길래 명절에도 일하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제 구글플러스는 제게 NEXT를 집으로 표시해줘요. 그만큼 NEXT가 참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좋았다는 말씀을 과거형으로 드리게 됩니다. 아직 NEXT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아니네요. 간담회에서 직원이 대놓고 ‘넥스트는 앞으로 없어진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하겠다는 걸로 들렸어요. 


기사에서 저희를 두고 ‘교육에 대한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이 말을 기사로 접한 게 너무 속상해요. 누구에게도 직접 들은 적이 없어요. 전공자는 저희를 보면 우스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비전공자도 해내고 있어요. 물론, 제가 현업 개발자처럼은 할 수 없어요. 누군가 제게 ‘자바 잘해?’라고 물으면 쉽게 ‘네’라곤 말 못하겠어요. 그런데 ‘겁이 나지 않아요’라곤 대답할 것 같아요. 비전공자들이 이렇게 변하고 있거든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린 마루타야’라고 했어요. 불평은 아니었어요. 저희를 대상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게 좋았거든요. 2기 커리큘럼은 저희가 겪은 시행착오를 쫙 빼고 나와서 부러울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런 게 앞으로 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다들 힘들어해요. 직장을 그만두고 온 사람, 대학교에 가지 않고 온 사람도 있는데…. 어린 친구들은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걸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서 여길 왔는데….

저는 묻고 싶어요. 교수님, 학교, 아니 네이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묻고 싶어요. 기존에 있는 사람을 무시, 아니 고려하지 않으면서까지 이렇게 빨리 변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를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없었나요? 지금 당장은 현업 개발자와 비교하면 미흡해도, 잠재성이 있을 텐데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건 성급한 거 아닌가요?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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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블로그 주인 작성.

제가 늘 마음으로 믿고 지지하는 친구의 인터뷰가 이렇게 기사화 되어 나왔습니다. 

늘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친구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잘 갈무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결국 인터뷰를 보면서 울고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생활이 곧 저의 생활이었으며, 그 친구와 충돌하는 토론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공감대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을텐데 잘 해주어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나마 멀리멀리 남겨둡니다.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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