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간이 화살 같이 날아 그린팩토리 앞에서 시위를 한지 1년이 되었다. 수백번도 더 외친 이사회 날짜 1월 28일. 그리고 내 페북에도 1년 전 그날! 하면서 사진이 뜨고야 말았다. 1년 전 그 날도, 날씨는 이토록 호되게 추웠더랬다. 


 1월 28일로 시위를 마무리하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마냥 나는 애써 평온을 유지하려 했다. 미뤄뒀던 공부도, 프로젝트 계획도 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52분. 나는 이불 속에서 주룩주룩 울다가 마침내는 스스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컴퓨터를 열어들고 앉았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꽃을 나눠줄 생각을 한 점을 칭찬해주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꽃은 어떠한 상징도 아니었다. 나는 단 한 시간의 1인 시위 끝에 완벽하게 겁에 질렸던 것이다. 도저히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그 자리에서 멀뚱히 서서 출근길 네이버 직원들의 감정없는 눈길을 받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나에겐 그 분들이 이해진이었고, 윤재승이었다. 응원해주는 분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분도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말 한 마디에 뭐든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결정권자들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편해서, 분위기나 풀어보려고 꽃을 사봤을 뿐이었다. 그게 효과가 없었다면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선택했겠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나는 겁에 질려서 그것을 숨겨보려고 꽃을 골랐을 뿐이다.


 그 기간 동안 나의 9.5할은 두려움으로 차 있었다. 0.5 할은 희망이었다. 어쩌면, 혹시나 뭔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친구들은 아무도 함께하지 않았다. 모두 두려웠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래, 몇몇 친구들은 함께 하겠다는 말도 꺼냈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혼자였다. 사실 나는 누구에게도 설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설득하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혼자였다.  그 누구를 탓하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무서웠기 때문에 이해한다. 우리는 협박당했고, 포기하는 중이었으니까. 모두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자는 나를 비판하고 비난했다. 내가 시위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밉보여서 협박 내용 그대로 우리가 모두 IT업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 걱정을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고, 내가 정치놀음을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나는 내 방법이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성원들이 대응하려고 논의 중 이었던 다양한 방법과 동시에 진행해야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내가 시위를 하는 모습이 일부에겐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비추어져서,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지만 나 역시 내 진의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 즈음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내 포스팅을 보고 페북 친구를 요청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 수락했다. 홍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수상쩍은 넥스트 페북 계정" 이 논란이 되었다. 넥스트 학생들과 친구를 맺고 학생들 페북을 사찰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시의적절하게도 그 계정은 그 소문과 동시에 없어졌다. 폐쇄는 확신을 불러일으켰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나에게 모르는 사람은 모두 네이버 인사팀으로 보였다. 이제와서 말이지만 그 때 친구 맺어놓고 막 끊어낸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다. 


 네이버에 취업한 친구들에게 폐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었다. 걱정하면서도 맘 먹은건 안 하는 인간이 못 되어 더 미안했다. 직접 얼굴 볼 때는 차마 말하지를 못해서 내 마음에 계속 빚으로 달아두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얼굴보면 말 못하겠지만...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고 시위를 했는데 다들 아무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은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라, 내가 시위를 하건 꽃을 나눠주건 왜 또 니가 나서서 그걸 해야 하느냐고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유별난 자식을 둬서 늘 버거워하시는 부모님이 참 안쓰럽다. 


 화가 나고 슬프다. 아직도 그렇다. 1년이 됐는데도 학생들과 교수님이 지쳐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질질 끌고 있다. 다들 포기하게 만들고 넥스트를 원하는 대로 직업학교로 만들려는 꼴이 우습다. 그래, 큰 돈임을 안다. 내가 언제 억을 만져나 볼까. 기업 논리 앞에는 약속도 사회적 책임도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나도 멘탈 붕괴말고 얻은 것이 있다. 믿음이다. 그린팩토리 앞에서 꽃을 들고 있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내가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두려움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 자세도 얻었다. 나도 두려웠지만 결국 협박은 미수에 그쳤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IT업계 어디에도 갈 수 없게 하겠다던 협박범의 어마어마한 협박은 확실히 공갈이었거나, 네이버 계열에만 먹히는 것 같다. 뭐, IT업계에 네이버가 제일 크긴 하지만. 


오만하게도, 나는 내 판단의 윤리적 적합성에 대한 믿음도 얻게 되었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라서, 잘못된 일은 하지 않는다. 이 사건의 전말에서 비상식적인 것은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는 유치원에서 배우는 윤리의식을 깨뜨린 네이버라는 거대 회사다. 


아, 한참을 울면서 글을 썼더니 감정이 씻겨내려갔다. 누가 미운가 생각해봤더니 아무도 밉지 않고 그저 불쌍한 사람 몇이 떠오른다. 꼴 좋다. 군자되긴 글러먹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튀고 싶고 나서고 싶어한다고도 많이 말한다. 나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좀 생각을 바꿨다. 나는 남들이 하지 못하지만,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두들겨맞을 만큼 맞았는데도 이 모양이면, 나도 둥글어지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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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봅니다. 많은 분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셨던 넥스트 사태는 1월 28일 네이버 이사회 결과를 받아든 이후, 딱히 확정된 것 없이 미결된 채로 머물러 있습니다. 열명 남짓 뽑았다던 3기 교육은 예정대로 '모듈식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기존 넥스트의 교육을 기대하고 지원했던 3기  최종합격생 중 일부 학생은 입학을 포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네이버 이사회의 선언대로 곧 넥스트의 교육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전문가 위원회]가 구성되어 넥스트 교육방향을 결정해 나갈 예정입니다. 넥스트가 원래 꿈꾸었던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반 사용자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낼 융합형, 현장형 인재' 를 배출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는 넥스트 구성원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난 몇달 간, 넥스트 사태에 관한 많은 글들을 이 블로그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배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이 블로그를 개설할 때는, 그날 그날 배운 개발 지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일지(혹은 일기) 형식으로 글을 올릴 예정이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블로그가 오픈될 일이 있을거라는 상상도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넥스트 사건에 관해 글을 쓰려다보니 제가 넥스트 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필요가 있었고, 페북을 통한 본인 인증(?)과 더불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링크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개인적인 내용이 조금이라도 들어있는 글"은 모두 비공개처리하고, 살면서 처음으로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홍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넥스트 사태가 애매하게 부유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1월 28일 이후로도 언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본연의 임무(?)인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수님들께 따끔하게 혼이 나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안정감을 찾으려 노력해보았지만, 불안감이 가득한 제 마음 속에는 제가 원래 꿈꾸었던 미래보다는 지금 눈 앞의 상황만이 들어올 뿐입니다. 


 불안감은 제게 상흔이 되어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흉터보다는 남은 제 인생을 위해 해왔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다시금 상기하는 중입니다. 이에 구정을 기점으로 제 관심사를 다시 원상복귀해놓을 작정입니다. 넥스트에 또 다시 근본이 흔들릴 만큼 큰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저 역시 이 곳에는 학습 내용이나 작은 단위로 올릴 예정입니다. 또한 넥스트 생활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 정도는 사진과 함께 이야기 형식으로 올릴 수도 있겠네요.ㅎㅎ


 "얘는 왜 이렇게 선언을 좋아하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와의 약속은 쉽게 가벼이 여겨 어겨버리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신과 하는 약속은 공언을 하려고 하는 편이라 그렇습니다.ㅠㅠㅠ부디 제가 꿈을 꾸며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것을 '그깟 불안감' 때문에 멈추지 않도록, 넥스트 구성원들이 함께 꿈꾸던 넥스트가 되길 바랍니다. 

 


간략한 1인 꽃시위 일지 간략한 1인 꽃시위 일지


 안녕하세요. 지난 1월 20일 부터 이사회가 열렸던 28일까지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썬,더 호글(다영글)입니다. 시위가 끝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쉽사리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은 참 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에서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지키겠다는 약속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확실치 않고, 또 다시 그러한 약속을 믿어야 하는 저희들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황과 관계없이, 이렇듯 간략한 일지와 글을 올리는 것은 제가 이번 1인 시위를 통해 느낀 것을 많은 분들께 전달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우선, 이번 시위를 통해 저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그렇게 순진하고 바보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이번 시위를 나가게 된 이유는 이미 앞선 글([NHN NEXT(넥스트)] 학생이 네이버에게 사회적 약속이란 무엇인지 묻습니다)에 모두 담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넥스트의 학생으로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서...제발 저희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알리기 위해서...방법이 정말 없어서 그린팩토리 앞에 나섰던 것입니다. 


 저는 비록 혼자 서 있었지만, 친구들과 교수님들의 마음을 함께 가지고 온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무거운 마음으로 한 시간을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피켓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는 바쁜 출근길, 더 많은 분들께 저희 상황을 알릴 수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꽃을 나눠드리게 되었고, 꽃시위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더 많은 분들께 저희 이야기를 전달하고 소통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위를 제지하시던 분들도, 웃으면서 인사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던 분들께도 꽃을 드리면 살포시 미소지으며 사양의 눈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라며 인사 드리면 "고맙습니다" 하며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린팩토리 앞에 서 있는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분들께서 "힘내라" , "응원한다", "추운데 고생많다" 는 등의 말씀을 건네어주셨습니다. 


 미련하고 바보같이 저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나섰지만, 진심이 전달될 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고,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진심의 힘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바보같아도, 진심으로 이야기 하면 그것이 전달되는 사회라는 것을...이번 1인 꽃시위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웬 사진인가 하시겠지요? 제가 시위를 나갔던 7일 중에 마지막 날이 가장 추웠습니다. 나눠드리던 장미꽃이 한 시간도 채 안돼서 다 얼어붙어 시들해질 만큼 날씨가 추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날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힘내라", "마지막이니 기운내라" , "추운데 고생한다" 하시며 따뜻한 음료들을 건네어 주셨습니다. 보시다시피 너무 많이 주셔서 나중에는 마음만 받겠다며 사양을 하거나, 어렵게 사양해도 손에 쥐어주고 가시는 분이 많이 계셨습니다. 


 이렇게 제 걱정을 해주신 분들만이 저희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신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많은 분들께서 며칠동안 넥스트 상황에 대해서 더 관심 가져주셨고, 걱정해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기분 좋은 출근길에 제가 큰 소리로 외쳐대는 말들-"안녕하세요 넥스트 학생입니다! 꽃 한 송이 받아가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넥스트 문제에 관심가져주세요! "- 에 불편하셨을 수도 있는데 호의를 가지고 꽃을 받아주시고, 따뜻한 시선으로 저희를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넥스트에 입학할 당시, 학업계획서의 제목은 <고맙습니다> 였습니다. 학업계획서를 쓰는 것만으로도 제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정의할 수 있었고, 동시에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넥스트 학생으로서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셔서 고맙습니다. 곧 넥스트가 폐지될지 모른다는데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친구들과 교수님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쥐고 길에 나섰을 때, 저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NHN NEXT 사태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물론 네이버 이사회에서 NHN NEXT를 폐지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시 한 번 공언했지만, 또 언제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모르는 채 불안해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넥스트 학생들의 현실입니다. 많은 교수님들께서 저희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남아주실 것 같지만 예전과 같지 않은 불안감과 학습환경에 처해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NHN 넥스트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주세요. 많은 관심이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저희들은 예전처럼 프로그래밍과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들과 이후에 들어올 저희의 후배들이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관심 가져주세요. 저희는 더 노력해서 좋은 인재가 되어 나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그동안 저희의 목소리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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